꿈이 잦다.
한 밤 아내가 코로 내쉬는 저음의 b플랫을 을지로 칠가 대장간들 풀무소리로 듣고
이를 다시 댕댕거리며 눈앞을 지나가는 왕십리행 전차 바퀴 소리로 지워버린 채
깨어 나오니 거실 마룻바닥이 달빛으로 흥건하다.
꿈이 잦다.
삼십년을 잘라 버리고 남은 반 토막, 그 삼십년을
사우디 동쪽 해안 알코바, 걸프만 후덥지근한 오후 미지근한 바다에서 잡다 놓친
물고기가 남긴 촉감으로 되찾으려 안간힘을 쓴다.
미끄덩하다 비늘에 쏘인 손바닥이 아리다.
꿈이 잦다.
널찍한 방 한가운데 아픈 이모님이 뒷모습으로 누워계시다.
육부작 미드 시리즈로 쪼갠 첫 화면에서 초등학교 때 찾아간
계륵리 이모부댁을 떠난 비포장 신작로가 멀리 사라지고 있다.
버스는 덜컹거리는데 승객들은 눈동자 없이 서로를 바깥 풍경으로
마주보고 있다.
꿈이 잦다.
LED로 흐릿한 이정표는 뒤엉킨 정류장들을 차례로 건너뛰고
방금 내린 정거장에서 여수행 기차표를 사려는 내 앞에서
매표소 역무원이 무심한 표정을 지우고 시간을 지우는 사이
역 건물 그림자로 사라지던 아내의 가위눌린 잠꼬대를 흔들어 깨웠다.
꿈이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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