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더불어 50

장미의 이름-2

한편,  중세 기독교 세력이 이교도, 즉 이슬람 영토의 정치적, 경제적 정복을 꾀한 침략 전쟁인 십자군 전쟁(1096-1296?)의 종교적 대의, '하느님의 뜻'은 이단 심판(이단의 이름으로 이슬람은 물론 유대교와 불온-불순한 기독교인의 단죄)이었는데  이번에는 부패를 한사코 부인하는 위선적 교황세력과 탐욕을 부정하지 않는 덜 위선적인 영주들에 의해 소집된 기독교 군대가 역시 같은 기독교의 한 파이나 반부패와 청빈을 주장하며 '저항'하기에 이단-반체제세력으로 낙인찍은 돌치노 파를 동일한 대의 즉 '하느님의 뜻'에 따라 무력으로 섬멸하는 역사적인 사건(1304-1307)을 매개로 진행되는 심문관 베르나르 기의 추궁과 수도승 레미지오의 대응을 묘사하면서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장님의 노수도사 호르헤의 ‘..

책과 더불어 2025.02.23

장미의 이름- 1

거의 모든 책의 이름, 특히 소설의 제목은 작가의 이름만큼이나 상상과 공감으로 주고받은 것들에 관한 대체 불가한 어떤 값을 담고 있으며, 대화와 소통의 즉각적인 지시어에 다름없어 이야기 전체 또는 특정 상황에 대한 압축된 맥락으로 간간히 소환-참조할 만하다. '장미의 이름'처럼, 그러나, 읽어 가면서 소설의 맥락과는 거의 무관하게 (거의 무의미하게)호명되면서 그 '이름'으로 지시하려는 것(작가의 의도)에 대한 궁금증이 간간히 불현 듯 파장처럼 일렁이다가 이야기의 맨 마지막 문장을 읽은 직후, 마주하는 어떤 묵직한 적막감의 물결 속에서 또는 소설 전체에 대한 음악 없이 추는 춤 같은 반추 작업을 채 마치기도 전에 역자의 각주와 작가의 뒷말로 인해 소설의 맥락에서 혹시 놓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뚱맞은 ..

책과 더불어 2025.01.26

소년이 온다

'머리를 덮은 쇠항아리' 같은 하늘, 몰려오는 '먹구름'의 침묵으로 묵묵히 읽으며모든 사건의 그 당사자는 될 수 없는 것이라는 그렇게 위로 받기 전에 메마르고 쓴 입술이 희미하고 아득하게 다시 불러 낸 그 시절의 무력함과 비굴함으로 마주한,타자로서의 분노의 흔적과 타자로서의 증오의 자욱과 타자로서의 공감의 제스처들.    이어 숨소리로 각인하며, 가슴으로 내려가는 시 한 편. 밥 -장석주 귀 떨어진 개다리소반 위에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한 그릇의 더운 밥을 얻기 위하여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

책과 더불어 2024.12.31

죽음의 중지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무한대: 수학-물리학에서 또는 종교-철학 영역에서 이른바 무한대가 매우 극적이고 적막한 개념 중의 하나인 까닭은 대상으로서 가닿을 수가 없으니 불편하지만 인정해야 하고 현상으로서 없을 수가 없음을 불안하더라도 수용해야 비로소 흐릿하지만 인식 가능하고 비좁게나마 확장 가능한 어떤 세계가 펼쳐지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갖가지 기호와 모든 언어는 어떤 수식과 맥락 속에서 또다시 새롭고 흥미로운 무리와 짝으로 등장할 수 있다. 소설의 첫 문장은 그렇게 죽음 저쪽 그 무한대에 대한 불편한 호기심을 도발하면서 그 불안한 고요함이 사라지는 순간을 함께 느껴볼 것을 제안한다. 같은 주제를 스페이스 오페라적 상상력과 어떤 외계 언어들을 번역한 언어로 수다스럽게 다루는 베르베..

책과 더불어 2024.12.24

양 철 북

“War is what happens when language fails.”20세기 캐나다를 대표하는 여성작가로 꼽는 Margaret Atwood가 한 이야기라고 한다,War의 해석은 전쟁인데 대량학살과 재앙적 파괴를 기획하고 실행해온 류적 행위와 그리고 유구한 모든 종교적,  사회적 갈등과 도덕과 윤리와 법을 동원하는 사적, 공적 폭력들도 포함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language fails, 언어의 실패는 대화의 부재로 읽으면 모든 오해와 갈등을 때론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며 극적인 단절까지 유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또한 언어, 말이라는 것 그리고 눈짓과 몸짓과 때론 침묵 등도 저 갈등은 물론 화해의 수단에도 포함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는 것을 저 한 줄의 경구는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소설은 ..

책과 더불어 2024.05.06

바닥에 떨어뜨려...

“ 2017년 촛불혁명은 단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국정농단’이라는 희대의 사태를 맞이해 진보와 중도 보수가 연합해 이루어낸 성과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유승민, 김무성 등 당시 여당 새누리당 안의 "비박非朴"인사들이 동참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에 분노하고 박근혜 탄핵에 동참했던 합리적 보수 인사들을 포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2017년 5월19일 윤석열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했다.(...)당시 범여권 내에서 “윤석열은 검찰주의자일 뿐이다”라는 우려 섞인 지적도 있었지만, 대중적으로 윤석열은 검찰 내 ‘개혁세력’의 상징적 인물이 되어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을 제도..

책과 더불어 2024.03.02

순이 삼촌, 제주도우다...

1976년 즈음 학교 운동장에서 (아마 유신 독재의 긴급조치에 따른 휴교령 기간이 아니었나 싶다)홀로 공놀이를 하던 중, 운동장 한 켠에서 징과 북소리에 맞추어 탈춤 연습에 열중하고 있던 한 무리에 들렸다가, 나에게 다가온, 낡은 검정 코트와 그 눈'빛'과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기억에 아직도 어슴프레 남아있는, 한 외판사원의 (당시 유신독재의) 긴급조치에 대한 평가를 곁들인 열렬한 '정치적, 문화적' 마케팅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 영인본을 구입하면서 비로소 읽기 시작하게 된 창비(창작과 비평)이고 그래서 그즈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 '순이 삼촌'이었는데 소설이 나온 지 거의 45년 후 만나게 된 작가 현기영 선생으로부터 '순이 삼촌'은 창비 영인본이 발행된 1975년이 아니라 1978년 같은 계간지(가을..

책과 더불어 2023.10.19

셔기 베인

한글로 쓰고 영어로 번역했거나 영어로 쓴 것을 한글로 번역했거나... 번역이 전달하려는 어떤 뜻의 그 흔한 알쏭달쏭함 그 자체마저 즐겁게 누릴 수 있음을 알려준 오랜만에 만난 '빼어난' 번역... "" 전 핏헤드라는 지역을 처음 들어봤어요." 수요일 저녁 모임 여자가 말했다. 자그마하고 갈대처럼 가냘픈 메리 돌을 보면 조각칼이 무른 나무를 도심질하듯 술이 그녀의 몸을 도려낸 것 같았다. 큼직한 밤색 눈 아래 뺨은 푹 꺼졌고, 짙은 갈색 머리는 피골이 상접한 몸 위에 빌린 가발처럼 달려있었다. 메리 돌이 겨우 스무네 살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애그니스는 할 말을 잃고 심장에 손을 올렸다. 세상에는 자기보다 힘든 사람들이 늘 있다는 리지의 속삭임이 귓전에 맴돌았다." (387쪽) 여전히 현대 기계..

책과 더불어 2023.02.21

조국의 법고전 산책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법이 부당하게 침해되고 있는 한 -그리고 세상이 존속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계속된다- 법은 이러한 투쟁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즉 민족과 국가권력, 계층과 개인의 투쟁이다. 이 세상의 모든 권리는 투쟁에 의해 쟁취되며, 중요한 모든 법규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법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쟁취된것이다. (...) 권리는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힘이다. (...) 법규나 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는 이 같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같으며, 수많은 촉수로 단단히 들러붙은 해파리를 제거하는 일과 같다. 권리에 대한 경시와 인격적 모욕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형태로서의 권리 침해에 저..

책과 더불어 2023.02.21

중국 중세사회로의 여행, 라이샤워가 풀어쓴 엔닌의 일기(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책 표지의 대문자, 큰제목은 '중국 중세사회로의 여행'이고 소문자로 추가한 '라이샤워가 풀어쓴 엔닌의 일기'가 내용의 세부 좌표를 알려준다. 일기의 원제목은 입당구법순례행기이다. 아홉이라는 숫자가 여러차례 반복되는 여정인데 우리의 (통일)신라-발해시대이자 당나라 시절에 엔닌(圓仁)이라는 일본 고승이 대당(唐) 사절단인 견당사의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불교의 한 문파인 밀교를 '구법'하고자 순례하는 이야기,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를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삼되 당나라의 정치 제도와 관습을 또 다른 소재로 갖고와 '풍부하게' 확장하고 '세밀하게' 확대하여 풀어쓰는 라이샤워의 언어적 역사적 지식의 해박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고 특히 중국 동부 해안 지역에서 거주하는 신라인들과 '해상왕' 장보고의 활약에..

책과 더불어 2022.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