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는 드라마와 더불어 30

기생충, 조커, 오징어 게임

감성이란 물결과 같아서 그 겉모습은 고요함과 흔들림, 오르고 내림, 높고 낮음, 깊고 얕음, 넓고 좁음, 그리고 길고 짧음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느끼고 보고 이용하는 파동이란 것의 물리적 속성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감성의 알맹이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각각의 빛깔과 태도는 기쁨, 슬픔, 화남, 아픔, 외로움, 반가움, 섭섭함, 미안함, 달아남, 다가옴, 차가움, 따듯함들인데 각각의 두께와 밀도, 무게를 저 외양의 물리적 속성(또는 어떤 표준)으로만 계량 불가능한 까닭은 번쩍임, 솟구침, 은밀함, 모호함이 그 내밀한 작동 방식의 수수께끼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그 방식의 또 다른 무리들인 것으로 보이는 반전의 결합과 분열의 수렴, 탄생의 재귀와 소멸의 환상에 개입하는 힘(들)의 정체와 경로가 얼마간이라도 ..

2020, 20, 3030

국가가 그 구성원의 참여와 합의에 의한, 이른바 공공이라는 추상적 이름으로 더없이 존귀하고 유일무이한 생명의 현존이자 실체인 사적 신체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도록 용인되는 강제력 또는 물리적 타격 중 그 가공할 만한 힘, 세기를 기준으로 순서를 매긴다면 첫 째가 군대에 의한 살상 무력 즉 군사력일 것이고 그 다음은 경찰력을 꼽을 것이다. 앞의 것은 전쟁이라는 예외적인 상황을, 뒤의 것은 일상이라는 보편적 상황을 그 행사의 전제로 삼는다. 그리고 이런 경찰력이 한 인간의 일상에 느닷없이 침입, 한 사람을 ‘죄 없는’ 범죄자나 ‘멀쩡한’ 비정상인으로 낙인찍고 몰아넣기 위해 이 때 맨 먼저 사용하는 물리력 즉 고문 또한 국가의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듯 자행되던 시절이 우리에겐 아직도 뚜렷하고 매우 가..

도구적 지능, 도구적 가치

스탠리 큐브릭의 필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유추하고 판단하고 실행하는 스마트한 컴퓨터 할(HAL)이 인간에게 종말론적 재앙의 존재로 드러나는 방법은 다름아닌 이미 유추하였고 벌써 판단도 끝내어 곧 바로 실행도 해봤음을 알려주는 고백적인척하면서 기계적인척하는 목소리이다. 인간의 즉각적인 지시와 단호한 명령을 (마치 기독교도가 십계명을 대하듯) 요리 회피하고 조리 우회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도구적 목적을 새로 계산하는듯 지연하고 전혀 달리 연산한듯 거부하며 끝내 종결(당)한다. 따라서 저 목소리는 성스러운 고백소 안에서 속삭이는 말과 단어 사이에 잠겨 있을 법한 자학적 참회의 숨소리와 자조적 저주의 침묵을 남성도 여성도 아닌 기묘한 중성의 톤으로 제거하고 이전에 벌어진 살인(적 작동)도..

팩트, 넌픽션, 목소리

- 여의도 샛강, 하늘에서는 바람의 가벼움을, 물 위에서는 파동의 간지러움으로 즐긴다. 문재인(정부) 지지율이 70%를 넘나들어도 이른바 보수 종이-미디어들에는 교활하게 픽션-반팩트적인 기사와 (믿어라 그럼 알 것이다 식의) 주의주의적 편파 주장들이 과소하지 않은데 sns에서는 이를 팩트-넌픽션으로 올바르게 지적하고 다큐-직설적으로 비난하는 댓글들이 꽤 압도적이다. 지난 9년 동안 sns를 도배하던 그 많던 불법의 '익명직' 국가 공무 댓글 알바들이 지난 대선과 함께 대부분 초법의 무명직으로 재빨리 다시 잠복했고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탈법의 잔당들도 김어준의 '옵션열기' 폭로로 직격탄에 다름없는 유탄의 세례를 피해 잠시 비법의 은신모드에 들어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의(민주주의)제의 여러 두드러진 특징..

미드, 권력적 환유, 종교적 제유

- 올봄 이년 만에 다시 핀 군자란. 10 여 년 째 피고진다. 요즘 가급적 방영 시간에 맞추어 보려는 미드가 생겼는데 아마 초등학교 때 보난자 혹은 중고등학교 때 미션 임파서블 이후 처음 아닌가 싶다. The Game of Throne, 왕좌의 게임이다. 미드가 생긴 이래 그리고 인터넷으로 copy-left식 다운로드가 가능하게 된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방영시간이란 방송사의 '시간표'인데 예전의 미드들은 그 원본을 배 혹은 비행기로 수송해서 공중파로 보았고 지금은 그 carrier가 인터넷으로 real-time에 가까우니 보난자들의 시간표는 늘 뒤늦게 도착하는 완행 열차에 관한 추억의 메시지이다. 얼마 전 시즌 6을 시작한 드라마는 세속적 권력과 영토에 대한 소유욕을 대문자 주제..

피에타, 갓파더 그리고 뭉크

- 비통함은 늘 비스듬히 눕는다. 뿌리치되 가볍지 않고 짓누르되 무겁지 않다. 하나. 알려진 대로 몇 년 전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피에타'는 김기덕 자신의 '신체' 일부에 관한 자전적 영화인데 이 주제는 로만 카톨릭의 뿌리칠 수 없는 신앙적 파토스인 반면 유대교의 또 다른 파생적 산물인 개신교에게는 그냥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은 신학적 파토스이다. 14세기 이후 독일에서 등장한 이래, 원본 없는 피에타를 재현하고 모방하고 모사한 모든 화가들과 조각가들이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미켈란젤로조차 가까스로 피해간 기하학적 곤경이자 신학적 아포리아 즉 마리아의 아들로서 태어나, 신으로서 부활할 어리되 늙은 예수와 그녀의 팔과 무릎위에서 영원히 잠든 늙되 어린 예수의 생물학적 크기와 종교적 무게의 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