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더불어

순이 삼촌, 제주도우다...

todayandnow 2023. 10. 19. 12:42

1976년 즈음 학교 운동장에서 (아마 유신 독재의 긴급조치에 따른 휴교령 기간이 아니었나 싶다)홀로 공놀이를 하던 중, 운동장 한 켠에서 징과 북소리에 맞추어 탈춤 연습에 열중하고 있던 한 무리에 들렸다가, 나에게 다가온, 낡은 검정 코트와 그 눈'빛'과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기억에 아직도 어슴프레 남아있는, 한 외판사원의 (당시 유신독재의) 긴급조치에 대한 평가를 곁들인 열렬한 '정치적, 문화적' 마케팅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 영인본을 구입하면서 비로소 읽기 시작하게 된 창비(창작과 비평)이고 그래서 그즈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 '순이 삼촌'이었는데 소설이 나온 지 거의 45년 후 만나게 된 작가 현기영 선생으로부터 '순이 삼촌'은 창비 영인본이 발행된 1975년이 아니라 1978년 같은 계간지(가을호)에 실렸다며 기억 정정을 받게 되고 술자리를 마련한 친구가 느닷없이 제주도에서 '삼촌'이 어떤 호칭인지 물어보는데 우물쭈물하다가가 결국 핀잔세례를 받고 말았다. 읽었으나 오래되어 기억이 잘 안난다고 답했거나 소설을 처음 읽었던 당시에는 현대사 특히 4.3 항쟁에 관해 거의 무지 수준에 다름없어 소설이 함축하는 정치적 서사와 역사적 맥락 또한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었)다고 둘러댔으면 조금 덜 무안했을 터.

 

불타고 있는 마을은 와흘리만이 아니었다. 얼마 후 대흘리, 와산리, 선흘리, 교래리에서도 불길이 솟았다. 조천면 중산간지역은 온통 검은 연기로 뒤덮이고 연기 아래로 주황빛 불길이 넘실거렸다.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태우고, 모조리 빼앗아라! 이른바 삼광(三光) 작전이었다. 아비규환의 지옥도였다. 마을 안 여기저기에서 총소리와 함께 인간과 가축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

하느님이 명령한다.

"그러니 너희는 당장에 가서 아말렉을 치고 그 재산을 사정 보지 말고 모조리 없애라!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떼와 양떼, 낙타와 나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라!"

 

최고사령관 로스웰 브라운이 단호하게 천명한다. “사태의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오직 진압뿐이다!" 이승만이 명령한다. "공비 토벌을 빨리 끝내라. 시일을 끌면서 이렇다 저렇다 보고하지 말고, 공비가 없어졌다는 보고를 듣고 싶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불순분자를 제거하라! 지체말고 단숨에 처리하라! 가혹하게 응징하라!" 조병옥이 맞장구친다. "온 섬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워 버려야 한다!" 월남민 교회의 목사가 설교한다. "한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서청 여러분을 위해 하느님께 축복을 청합니다. 여러분의 승리는 곧 하느님의 승리입니다. 어서 그 붉은 무리들을 소탕하고 오시오!" 연대장 송요찬이 외친다. "일본 군대는 이러지 않았어! 더 잔인하게! 더 잔인하게!"

(3권, 198-200)

...

사오일간 집중된 초토화 작전으로 한라산 둘레의 중산간 마을 백삼십여개, 일만 오천채의 집이 소각되었다. 온 섬에 가득한 화염의 붉은빛, 정두길은 그것을 피라고 생각했다. 피바다가 곧 해일처럼 들이닥칠 것이고 그 피에 자신의 피도 흘러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먼바다에서 해상봉쇄의 임무를 띠고 감시 중인 미 해군 극동함대의 존재를 떠올려보았다. 캄캄한 밤바다 한가운데서 온 섬을 휩싼 화염과 불빛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멀리서 본 그 불은 그들에게 기막힌 아름다움이었을까?

 

그리하여 이만명의 피란민이 생겼고 그들이 키우던 수만마리의 말과 소 또한 같은 운명이었으니, 한때 눈 쌓인 한라산 기슭 곳곳은 그들 인간과 짐승으로 꽉 차 있었다. 피란민 중에는 제 집터나 제 밭에 땅굴을 파고 숨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한라산 기슭의 수많은 자연 동굴이나 일본군이 판 동굴에 숨어들었다.

(3권, 213) - 제주도우다현기영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2023년 초여름 현기영

- 같은 책 속 표지

 

3권에서 펼쳐지는 제주 4.3 항쟁과 (무자·기축년의) 대학살 이야기는 더 이상 fiction이 아니라 제주 출신인 작가가 표지 속간지에 육필체로 제시한 저 담담한 문장 속의 그 어떠한 비극이자 불과 75년 전에 벌어진 생생한 역사적 사실, non-fiction 다큐인데 그 내용이 너무 잔인하고 너무 참담하고 너무 참혹하여 계속 읽어 나가기가 힘들어 몇 번이나 책을 덮었다가 펼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냥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한없이 무겁게 무겁게 가라앉는 그것들이 뒤돌아보지 않고 사라질 때 까지 기다렸다. 이어서 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에 대해서 다시 묻고 그 답이 혹시 떠오르기를 잠시 숨을 고르며 기다려야 했다.

 

백삼십여개의 중산간 마을, 일만 오천채 가옥의 대방화 직후에 섬 곳곳에서 가공할 집단학살이 벌어졌으니,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난 것이 12월 중순부터 약 이십일 간이었다. 즉결처분권, 즉 사람을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생사여탈권이 졸병에게까지 주어졌다. 대학살의 피바람이 전도에 휘몰아쳤다. 거의 모든 섬 젊은이들이 검거와 사살의 대상이었다. 단독선거를 반대한 김구의 한독당 소속 청년들도 똑같은 운명이었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 자들마저 단지 젊다는 이유로 죽음에 쫒기는 도피자 신세가 되었다.

처음에 만 십오세 이상 육십세 미만의 남성, ‘똑똑한 놈’ ‘똑똑해 보이는 놈이던 검거와 사살의 대상이 나중에는 노인과 여자, 아이들까지 무차별로 확대되었다. 아들 혹은 남편을 찾아내라고 고문당하던 도피자 가족들이 아들 대신에, 남편 대신에 죽임을 당했다. 이른바 대살(代殺)’이었다. 아이를 데린 젊은 여자들도 아이와 함께 죽었다. 아직 고개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들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배 속의 아기들도 어미와 함께 죽었다.“
(3권, 242쪽)

 

그리고 작가의 또 다른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중에서 다시 찾아 읽은 장두의 최후

 

이승만을 위한 환영회가 열렸던 관덕정 광장에 얼마 후 재산 유격대 대장 이덕구의 시체가 전시되었다. 그 고장의 신화에는 비범한 능력으로 일어나 관에 맞서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장사, 장수들이 여럿 등장한다. 신화의 정신은 때때로 현실에 구현되어 관의 침학으로 도탄에 빠진 섬 백성을 구하려고 떨쳐 일어난 불퇴전의 사나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을 장두라고 불렀다.

....

그러나 무자·기축년의 신생 중앙권력은 그들의 정치적 야욕의 제물로서 제주 백성 절반쯤 죽여도 상관없다고 공언했다. 그리하여 자기희생으로써 만인을 살린 왕조 시대의 장두와 달리, 무자·기축년의 장두 이덕구는 자신도 죽고 만인도 죽어버린 비운의 사내가 되고 말았다.

...

관덕정 광장에 읍민이 운집한 가운데 전시된 그의 주검은 카키색 허름한 일군복 차림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집행인의 실수였는지 장난이었는지 그 시신이 예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에 높이 올려져 있었다.

...

그리고 집행인이 앞가슴 주머니에 일부러 꽂아놓은 숟가락 하나, 그 숟가락이 시신을 조롱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하여 그날의 십자가와 함께 순교의 마지막 잔영만을 남긴 채 신화는 끝이 났다. 민중 속에서 장두가 태어나고 장두를 앞세워 관권의 불의에 저항하던 섬 공동체의 오랜 전통, 그 신화의 세계는 그날로 영영 막을 내리고 말았다.“

(지상의 숟가락 하나, 68)

 

일제 강점기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고 기록하는 1945년 8월, 그 이후의 한반도 상황을 대문자 주제로 삼은 소설(이병주의 지리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에서는 여전히 일제 강점기와 다를 바 없는, 마치 식민의 재식민화인양 또 다른 지배 세력 의 압도적 폭압과 피지배 계층의 처절한 저항과 유혈 투쟁의 서사들을 이끄는 주어는 토벌대와 파르티잔, 빨치산, 유격대 이고 제주도우다에서는 토벌대(미군정, 국방경비대,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단)와 입산자, 산부대, 산군이다.

 

그리고 저 산부대를 어떻게 기록했는지 확인하고자 다시 펼쳐 본 이병주의 '지리산'(7)에 실린 평론가 임헌영의 해설 안에서 재발견한 이병주의 아래 문장을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속에서도...확신이 필요합니다라는 현기영 작가의 저 권유와 겹쳐 읽었다.

 

사람이 죽는 광경, 뿐만 아니라 어떤 비극도 아름답게 쓸 수 있는 것이 아웃사이더가 아닌가. 인사이더는 죽고 죽이고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의미를 모른다. 그들의 운명을 그저 살 뿐이다. 그런만큼 충실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 분신자살이 보통으로 충실한 자살방법인가. 쿠데타군에게 붙들려 참살당하는 것이 보통의 생명인가. 아웃사이더는 그처럼 열렬하게 살 순 없다. 아름다운 문장을 감상하듯 생을 감상할 뿐이다. 승리의 기쁨이 없는 대신 패배의 아픔도 없다, 승리자들이 고대광실에서 샴펜을 터뜨릴 때 아웃사이더는 누옥에 앉아 소주를 마시면 된다.”

그해 53 222 면에서. -지리산7372

 

그리고 제주도우다에서 작가의 말

 

독자여, 그대가 이 소설을 읽기로 작심하였다면 그 길은 작가와 동행해 너무도 낯선 삶과 죽음의 비경을 찾아가는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작가는 이것저것 살피면서 그 먼 길을 느리게 걸어갈 텐데, 독자도 그 느린 행보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번 제주에서는 조천리와 그 골목들, 비석거리와 조천지서와 조천중학원을 살피면서 걷고 3.1만세동산과 서우봉과 함덕 해안을 느리게 걸으면서 그 수많은 동굴들을 품고 있을 한라산과 오름들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을 것이다. 무자·기축년의 최초의 함성과 신음과 절규와 그리고 최후의 숨소리가 들릴 때 까지. 더 천천히 더 느리게.  

 

제주 4.3평화공원 각명비

지난 2월 제주 4.3평화공원을 참배하면서 담은 각명비의 한 부분으로 (아직 제주도우다가 출간되기 전인데) 우연하게도  저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도 수많은 죽음의 한 실명으로 새겨져 있다. '안창세 26세 남 1948년 12.20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