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꽃의 블루 쉬프트, 로벨리아

todayandnow 2020. 7. 6. 15:27

꽃의 이름은 로벨리아인데 이름의 그 유래를 구글링하기보다는 그냥 소확행, 앙징맞다고 해야 할 것(이겠지만),

 

코발트 블루 또는 프렌치 블루를 Lilac 경계에서 살짝 덧칠하기 전 어떤 이유로 잠시 머뭇거리는 그런 흔적으로 배어 있는 색감의 빛에 이끌리면 현생 우주의 최초와 소멸의 항구적 스펙트럼이자 우주적 팽창의 무한한 항적이 반짝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주창조 148억 년, 어느 여름, 어느 오후에 일어난 로벨리아의 미묘한 블루쉬프트(Blue-shift) 관찰기인데 꽃이 온몸으로 내뿜는 감각적 매력 중 가장 민첩하고 빼어난 전달꾼으로 알려진 광자가 알갱이의 두툼함과 파장의 투명성으로 나의 눈 깊숙한 저 안쪽에 퍼져있는 시신경의 미세한 표면을 정확하게 적중하며 일으킨 반짝-찌릿한 자극에 담긴 색감의 기표가 나의 후두엽에 은닉된 바이오렛의 기의를 찾아내 매끄럽게 결합하였다면 이제 꽃은 아주 빠른 속도로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음으로 지각해도 된다(는 빛의 스펙트럼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 꽃이 바라보는 나의 시계의 초침 또한 눈금과 눈금 사이를 무수한 간격으로 잘개 쪼개고 그 빈틈을 한없이 느릿느릿한 몸짓으로 채워줄 것을 내심 바라며 잠시 더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이 행성의 모든 생물에게 예외 없이 닥친 모든 우연의 재앙과 모든 돌연의 행운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 징표로 간직한 원초적 시신경은 저 빛의 색감을 대멸종에 이어지는 또 다른 대멸종의 혹독한 시련과 몇 억 년에 걸친 망각의 심연을 거듭 용케 빠져나온 어느 원시동물의 기원적 후두엽에 봉인된 아득한 스카이 블루와 대조해보고 다시 그보다 더 짙고 더 깊고 더 차가운 태초의 울트라 마린으로 풀어놓은 바다 위로 반짝이는 별빛의 파장을 따라 용솟음치는 탄생의 축제와 번식의 향연이 다시 멀지 않았다고,

 

자신의 고향인 남아프리카 드넓은 원시의 평원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를 반도의 채 한 뼘 남짓한 여름 하늘 아래 이렇게 가까이서 그 오프닝 크레딧으로 들어보지 않겠냐며 마주 속삭이며 빙긋 웃는다.

 

"지극히 단순한 마음, 보통 사람도 어린이도 알 수 있는 당연한 마음, 남의 감정에 감염하는 마음, 그러니까 남의 기쁨을 기뻐하고 남의 슬픔을 슬퍼하여 사람과 사람을 서로 결합시키는 마음" -예술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

 

꽃의 마음으로 직접 전달하고픈 것 중 모든 예술적 쾌락을 끊임없이 뿜어내고 마음껏 향유하게 하는 유일한 원천인 생명의 경이로움을 끈질기게 이어가게 하는 공감(소통)의 환호만한 것이 달리 있을까 싶다는 뜻인 듯하다. 물론 조심스럽게 뒤집어서도 읽어야겠지만.

'글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여름 찹쌀떡 장수  (0) 2020.08.31
우매한 한 걸음... 디지털 제스처  (0) 2020.08.02
기억 1, 눈의 해부도  (0) 2020.07.06
앵두, 백석의 서러움, 그 뒷맛  (0) 2020.06.04
숫자 0, 그 패러다임  (0) 2020.04.26